기억에 남아있는 첫 자원봉사
초등학교(국민학교) 때 교회에서 노래, 무용, 연극 등을 준비해서 양로원에서 공연한 것이 봉사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글을 못 읽는 분들의 편지를 읽어 드리거나 대필해 드리기도 했고, 교회 언니 오빠들과 함께 장애인 시설에서 목욕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배고픈 사람을 대하는 우리엄마
자원봉사의 계기를 물어보시면 저는 항상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DNA가 있습니다.’라고 얘기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 어머니는 지나가던 누군가가 배가 고프다며 들어오면 밥을 해주시는 분이었거든요. 한 번은 어머니가 밥이 있는데도 밥을 새로 하시는 거예요. 그것도 석유곤로에다가.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든요. 그래서 ‘엄마 왜 밥이 있는데 바로 안주시고 새로 하세요? 엄마 나쁜 사람이야!’라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배고픈 사람은 밥을 급하게 먹으면 탈이 난다.’는 거예요. 그 때 뭔가 쿵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디 가서 활동을 할 때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은 어머니라고 자랑스럽게 얘기를 합니다. 아마 이 일이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그 때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시지만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 ‘북맘’
‘북맘’은 포곡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엄마들 모임입니다. 이 동네(용인시 포곡읍)에 조손 가정과 편부모 가정 아이들이 많은데 우연한 기회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누가 책을 읽어 주는거 처음 들어봐요.’ 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도서관 사서 선생님과 몇 명의 어머니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어떨까?’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활동입니다. 17년 전부터 쭉 해왔던 활동인데 2009년에 2009년에 ‘북맘’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어요.
‘북맘’의 활동과 기록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두 권의 ‘북맘의 동화나라’와 한 권의 ‘북맘 회의록’, ‘북맘의 동화나라 1학년 북맘’이 만들어집니다. ‘북맘 회의록’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어떤 책을 읽어줄지를 결정하는 회의에 대한 회의록으로 참석자, 책읽기 자료, 토론내용, 공지사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책에 대해 ‘좋다’와 ‘나쁘다’를 나누는 것이 아니에요. 읽어줬을 때 아이들이 즐거울 수 있고, 책과 가까워 질 수 있고, 뭔가 풍성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책을 선정하는 과정입니다. ‘북맘의 동화나라’는 회의를 통해 선정된 책을 교실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읽을지에 대한 15분의 활동계획서에요. 아이들은 이런게 있는 지도 모르겠죠. ‘북맘의 동화나라 1학년 북맘’은 책읽어주는 활동을 마친 북맘의 소감문 같은 겁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동영상을 만들어서 활동하느라 이걸 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북맘의 10년 역사를 자랑하기 위해 2018년에 ‘북맘들의 이야기’라는 문집을 만들었어요.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이 사업비를 포곡초등학교 동문회에서 주셨다는 겁니다.
DIY 인형 제작과 인형극 공연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주기 위해 인형극 인형을 북맘들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이 인형은 수면양말을 재료로 만들었는데요, 손을 끼워서 공연하는 인형입니다. 하나 더 보여드릴게요. 일일이 바느질 하고 박음질해서 완성한 인형입니다. 너무 잘 만들었죠!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들도 몰랐어요. 그저 우리가 바느질을 좀 잘한다, 재봉틀을 다룰 수 있다 정도로만 생각했죠. 이렇게 멋진 인형극 인형을 만들어낼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모두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매듭인형과 마법의 종이
유토감정놀이연구소에서는 여러 활동을 하는데요, 그 중에 감정인형 활동에 대해서 소개해드릴게요. 먼저 마크라메 인형 만들기 활동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마크라메 인형은 매듭으로 만들어진 인형이에요. 감정 인형을 만들면서 아이들에게 감정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표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줄 수 있어요. 내 감정을 내가 인정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 감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알았어. 인정할게.’ 라고 아는 척 밖에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 활동을 하면서 그걸 알려줘요. ‘따라 해봐. 표현하고 토닥토닥.’ 이걸 하면서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하게 하거든요. 아이들이 이 인형에게 ‘토닥토닥. 인정해 봐.’ 이렇게 해요. 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슈링클스 종이로 하는 활동도 있어요. 저희는 마법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이 마법의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합니다. 색칠을 했을 때 좀 연한 색이 나와요. 이것을 오븐에 넣어 아주 뜨거운 열을 받게 하면 이게 7분의 1로 축소가 되면서 단단해지고 색깔도 짙어집니다. 이 과정을 아이들이 직접 눈으로 보거든요. 그러면 처음에는 실망을 해요. 내가 열심히 했는데 그게 망쳐진 거잖아요. 우그러지고 찌그러져 버리거든요. 그래서 그때 저희들이 설명을 해줘요. ‘얘들아 지금 너희들이 어떤 일이 있어서 힘이 들고 할지도 몰라. 그런데 이 시간을 견디고 버텨내면 너희들은 단단해지고 색은 깊어질 거야.‘라고 얘기를 해줘요. 그러면 아이들이 ’그래요! 와 신기하다.‘ 이렇게 반응을 하죠.
시집 ‘오래 살다보니 별걸 다해본다’ 제작
심리미술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한 후에 수료증을 받았어요. 수료증이 있어야 이 봉사를 할 수 있거든요. 이 활동에서는 어르신들에게 시집을 만들어 드렸요. 제목은 ‘오래 살다보니 별걸 다해본다’입니다. 제가 지은 제목이 아니고 시설에 계시는 어르신 한 분이 저희를 볼 때마다 ‘아이고 오래 살다 보니까 별 걸 다 한다.’라고 하신 걸 제목으로 정한 거예요. 그 어르신은 류마티스 관절염이 심하셔서 손가락으로 숟가락을 잡을 수 없으세요. 손가락에 끼워서 식사를 하셔야 해요. 한 10년 넘게 뵀는데 항상 손을 책상 밑에 놓고 짜증을 내셨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활동이 미술 활동이잖아요. 그리고 찢고 붙이고, 만들고, 뭔가를 만져야 되고 해야 하는데 본인은 손이 오그라졌다 펴졌다가 안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화를 내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어르신께 손을 잡아드리면서 ‘어 괜찮아요. 훈장이잖아요. 열심히 살아오셨다는 건데요.’ 이렇게 계속 말씀을 드렸어요. 지금은 활동할 때 뭔가를 찢어야 되면 저한테 찢어달라고 안 하시고 입을 이용하시고 손도 사용하셔서 찢으세요. 시집은 이런 어르신들 열 일곱 분이 직접 지으신 열 일곱 편의 시와 활동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봉사하길 잘 했다
오늘도 수업에 들어갔는데 거기 있는 아이들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나 봉사하기 너무 잘했다.’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제가 어디 가서 이렇게 당당할 수 있겠어요. 사실은 제가 나이가 좀 있는데요. 이 정도 나이든 사람이 직업이 없어요. 그리고 부자도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당당하게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드문 기회거든요. 그래서 저는 굉장히 당당할 수 있어요. 제가 봉사 잘했다라고 생각할 때마다 당당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제가 끌어당기다시피 해서 봉사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지금은 저희 단체가 아니고 다른 단체를 설립해서 봉사를 하시거든요. 꾸준히 하고 계세요. 그럴 때 보면 아 일단은 내가 작은 역할은 했구나. 나 참 잘하고 살고 있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에 대한 계획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 기초 소양 교육 요청이 있어서 갔었어요. 학생들이 ‘봉사할 때 뭐가 제일 좋고,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나의 목표는 내가 죽는 날까지 봉사하는 거라고 대답했어요. 친정아버지가 오래 전에 고려대학교에 시신 기증서약을 하셨는데, 저도 제가 죽어서 거기까지 하는 게 목표예요. 몇 년 전에 다리 수술을 하느라 봉사를 잠시 멈췄거든요. 그랬더니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엄마 건강관리 안 하니까 엄마가 좋아하는 봉사 못하잖아.’ 그래서 휠체어 타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봤더니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건 가능하더라구요. 봉사는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 내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할 때는 봉사가 안 될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떤 봉사를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해요. 저는 이제 앞으로도, 제가 아주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도 봉사를 할 거예요. 편지를 쓸 겁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전달하는 것도 봉사니까요. 그것까지가 제 목표예요.
자원봉사를 지지해준 고마운 가족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감사입니다. 제가 이렇게 정신없이 봉사를 하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남편이 인정해줬기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이 이해해줬기 때문이에요. 엄마가 아침에 자기 머리 빗겨줘야 되는데 아침에 횡단보도 앞에 서서 노란 깃발 들고 녹색 어머니 활동을 하느라 못 묶어줬거든요. 그래서 우리 아이는 2학년 때부터 자기가 머리 묶고 다녔어요. 아이가 그것에 대해 불평불만 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 고맙고 또 고맙죠.